• 동두천 23.5℃흐림
  • 강릉 30.0℃흐림
  • 서울 24.7℃
  • 대전 24.5℃
  • 대구 28.9℃
  • 울산 27.3℃흐림
  • 광주 26.0℃
  • 부산 23.5℃
  • 고창 25.6℃흐림
  • 제주 29.7℃흐림
  • 강화 22.9℃흐림
  • 보은 24.4℃흐림
  • 금산 25.4℃흐림
  • 강진군 26.3℃흐림
  • 경주시 28.5℃흐림
  • 거제 24.1℃흐림
기상청 제공

2025.06.20 (금)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아파트 지구 이촌동의 생활 문화 조명

맨션, 타워, 시범, 시영, 시민, 공무원, 외인 등 각양각색의 아파트 백화점

 

경제인투데이 류현민 기자 | 서울역사박물관은 강남이나 여의도보다 앞서 형성된 이촌동 아파트 단지의 역사와 다채로운 주거 형태를 담은 『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발간했다. 이번 조사에는 시범아파트, 맨션, 시영·시민·공무원·외인아파트 등 아파트의 '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유형이 공존했던 이촌동의 기록이 담겨 있다.

 

이촌동의 옛 지명 중 하나는 ‘옮길 이(移)’를 쓴 ‘移村洞(이촌동)’으로 한강의 홍수로 인한 잦은 이주를 경험한 동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본래 이촌동에는 사촌리, 신촌리, 신초리 3개의 마을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면서 이촌동은 조선인 거주가 금지되고 폐동(廢洞)이 됐다. 해방 이후 모래밭은 대규모 정치적 집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고 여름과 겨울철 스포츠의 장소로 애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용산과 접한 빈 땅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고 한강의 수질과 환경은 급격히 훼손됐다.

 

1962년 건설부는 한강 변을 매립하여 시가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1966년 서울시는 이촌동의 한강매립공사를 최초로 완성했다. 한편 1967년 한강 유역의 홍수 통제를 위해 소양강 다목적댐이 착공되자 추진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는 자원 마련을 위해 한강 연안 매립사업을 시작했고 첫 대상지로 이촌동을 선택했다.

 

서울시가 이미 1966년에 완성한 이촌1동(동부이촌동) 매립지에 덧붙여서 한국수자원공사가 추가로 10만 평을 개발한 것이다. 그 탓에 이촌1동의 땅은 한강으로 불뚝 튀어나온 형태를 하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하던 이촌 매립공사에서 현재의 이촌로는 강변도로로 계획된 도로였다. 그러나 한국수자원공사의 추가 개발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강변도로가 변경됐다. 양분된 개발로 인해 이촌로를 중심으로 북쪽(서울시 개발)과 남쪽(한국수자원공사 개발)이 상이한 공간구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68년 대한주택공사(현재 LH공사로 통합)는 ‘하이츠’와 ‘맨션’ 같은 고급아파트의 개념으로 한강맨션을 계획했다. 성공적 분양을 위해 주공은 최초로 모델하우스를 도입하여 획기적으로 선분양을 시도했다. 1971년 27~57평의 대형 아파트 660세대가 한강 변에 세워졌다. 현재 재건축의 막바지인 관리처분까지 진행된 상태이다.

 

공무원아파트는 무주택 공무원들을 위해서 총무처의 수탁으로 대한주택공사에서 건립했으며, 작은 평형의 연탄 난방 아파트였다. 외국인 전용으로 지은 외인아파트는 경제개발과 외국인의 투자 촉진을 위해 주한 외교관과 유엔군 등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임대 주택이었다. 야외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고급 시설의 아파트였다.

 

매립공사 이후 이촌2동(서부이촌동)은 서울시 공영주택 사업에 따라 15~20평 내외의 소형 평형의 중산, 시영, 시민 아파트가 건립됐다. 한강 변을 따라 줄지어 건설된 아파트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과 더불어 내부의 불량주택지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됐다.

 

이촌동에는 외인아파트가 있고, 미군 부대와도 가까워 해외 문화를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동네였다. 미군 부대 PX에서 나온 햄버거와 피자 등의 먹거리를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미군에서 진행하는 카니발과 핼러윈 축제도 이촌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기한 풍경이었다.

 

1980년대 도심과 가까운 안정적인 아파트 단지로 유일한 곳이 이촌동이었고, 일본인학교와도 인접해 이촌동에는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다수 거주했다.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커뮤니티가 조성되고, 일본인 대상 음식점, 병원, 부동산, 판매점 등이 생겨나 ‘리틀도쿄’라고 불릴 정도였다. 아직도 이촌동 지역 버스에서는 일본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와 가까웠고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 조용히 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촌동은 형성 초기부터 현재까지 많은 연예인이 거주하고 있다. 한강맨션 1호 계약자인 강부자를 비롯하여 신성일, 엄앵란, 현미 등 1970년대 유명 배우 및 가수들이 살았다. 녹음시설로 유명한 서울스튜디오의 영향으로 가수 김현식 등도 잠시 거주했고, 최근에는 아이돌 가수 장원영이 이촌동 출신으로 유명하다.

 

이촌동에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40년 이상 거주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 지형이 평지이기 때문에 노인과 아이들이 다니기 편리하고 한강과 마주하여 자연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장기거주자와 친인척, 학교 동문, 각종 모임 등이 많아서 이촌동 사람들은 몇 다리만 건너면 서로를 알 수 있는 밀도 있는 관계망을 가지고 있다.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1개씩이라 아이들과 학부모는 서로 아는 관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곳을 ‘온 동네 CCTV’라고 부르며 아이 키우기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반면 지역 내 주요 도로가 이촌로 뿐이기 때문에 사생활의 노출이 쉬워 주민들은 행동을 조심히 하면서 조용히 다니는 경향이 있다.

 

주민들이 직접 각본을 작성하고 기획과 연기를 하는 '마을극단'은 2018년 창단되어 매년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이촌동 주민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극본을 집필하고 ‘안녕 동부이촌동’이라는 연극을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역 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신용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우리가족 고전읽기'는 가족 단위 독서 및 체험활동을 하는 소규모 모임이다. 이촌동 주민들은 ‘이촌동에는 고유한 향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동네의 애향심이 돈독하며 주민들이 주축이 된 다양한 주민자치활동이 많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촌동은 한강을 마주하며 서울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주민들은 여기를 ‘서울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서울 어디든 편히 갈 수 있는 요지에 있다고 여긴다. 또한 이촌동은 도로·한강·철길로 단절되어 ‘섬’과 같은 동네이다. 동 경계가 명확하기에 지역의 안·밖의 차이가 확실하고 그것이 오히려 내적 결속력을 견고히 했고, 주민들은 이곳에서 ‘편안한 아늑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공유수면 매립공사 후 동부이촌동은 전체적인 택지개발을 시행하여 주거지와 학교, 기관 등 기반시설이 설치됐으나, 서부이촌동은 판자촌을 일부 철거하고 서울시 공영주택사업으로 아파트만 건립되어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갖추지 못하게 됐다. 서부이촌동에는 학교도 없어 지역 내 학생들은 장거리를 통학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같은 이촌동이지만 상이한 개발단계를 거치면서 동부이촌동은 부촌으로 거듭났지만 서부이촌동은 개발이 지연된 오래된 아파트로 인해 거주환경이 낙후되면서 동·서부의 격차는 크게 나타나 한 마을이 아닌 두 마을이 되어 버렸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이촌동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아파트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도시 개발과 주거문화 변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이촌동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들여다보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한 '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는 서울시청 지하 1층에 위치한 서울책방 매장 및 누리집에서 구매할 수 있다.